붉은 얼굴과 투명한 그림자
송승은 개인전: 미끄러진 찻잔 Slippery teacup
2022.10.14-11.12 아트사이드갤러리
2022.10.14-11.12 아트사이드갤러리
안소연
미술비평가
*
강렬한 붉은 색 톤이 시선을 집중시키는 <하얀 주전자>(2022)를 보고 난 후에, 나는 고야의 그림 <1808년 5월 3일 The Third of May 1808>(1814)이 떠올랐다. 200여 년 전의 고전적인 그림을 갑자기 떠올리게 된 이유는, 두 팔을 벌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사람 때문이었을 거다. 그림 왼쪽에 화면 안쪽으로 비스듬히 서 있는 그 사람을 어둠 속에서 비추고 있는 강한 빛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피를 쏟으며 바닥에 엎드려져 있는 또 다른 사람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하얀 주전자>에는 의인화된 어떤 형상이 그림 왼쪽 깊은 곳에서 비추는 붉은 빛을 받아 얼굴의 반이 빨갛게 됐다. 크게 뜬 눈동자도 한쪽이 빛에 충혈된 것처럼 물들어 보인다. 탁자 위에 있던 붉은 색 찻주전자는 고야의 그림 속 엎드린 시체처럼 바닥으로 곧장 떨어질 찰나다. 서로 다른 두 개의 그림은 내게서 한순간에 비약적인 단서들로 엮여 하나는 눈 앞에서 마주한 채로, 또 다른 하나는 머릿속에 펼쳐진 기억의 잔상들로, 마치 거울에 비친 환영처럼 병치되었다.
**
두 점의 연작이 이어져 있는 <Overgrown plants 1, 2>(2022)는 송승은의 그림 특유의 장면을 보여준다. 보통은 하나의 테이블이 화면 중앙에 자리하여 캔버스의 평면에 원근법적인 공간을 뚝딱 만들어내면, 그 위와 아래 혹은 앞과 뒤처럼 환영적인 회화의 공간이 구성된다. 때때로 테이블 대신 소파나 의자를 매개하여 비슷한 정황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큰 소파나 의자에 몸을 깊숙이 기대고 앉은 등장인물은 회화적 공간에서 평면을 가로지르며 임의의 장소 안에 놓이게 된다. 테이블과 의자는, 그의 그림에서 사물이나 인물의 형상을 규명할 수 있는 일종의 장소다. 또한 형상과 형상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건[움직임]과 사건 간의 관계를 (서사없이) 교환하고 구축해내는 일종의 윤곽을 담당한다. 말하자면, 테이블과 의자는 재현된 사물이기에 앞서 회화 속 형상들 간의 비재현적 (혹은 추상적) 관계를 매개하는 장소로 기능한다.
그의 초기 작업 <밤-밤>(2015)이나 <밤의 새>(2017)에서 추측해 보건대, 밤과 같이 일련의 추상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그것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일종의 회화적 형상을 모색했던 것 같다. 유독 붓의 방향에 따라 큰 색면을 구성하여 그것의 추상과 재현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누군가의 촉각적인 시각을 견인해 가면서 말이다. 이후에 본격적으로 테이블과 의자가 회화에 등장하면서, <거짓말을 만드는 사람>(2018)과 <복잡하고 조용한 대화>(2018)처럼 어떤 서사적 장면의 착시 너머로 색과 색, 면과 면, 덩어리와 덩어리 사이를 돌아다니는 회화적 형상의 관계를 구별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송승은의 회화는 서술적인 장면을 향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을 훌쩍 넘어서는 형상을 향하고 있으며, 이는 재현으로 규명되는 것이 아니라 회화적 감각에 의해 “다루어지는” 일련의 (새로운) 범주를 가리킨다.
<Overgrown plants 1, 2 >에는 두 개의 캔버스를 수평적으로 연결시키고 그림 속 공간을 위와 아래의 수직적 관계로 설정하는 크고 긴 테이블이 등장한다. 캔버스의 표면과 가장 가깝게 평행 관계에 놓인 테이블보의 옆면은 테이블 위의 원근법적인 영역과 저 건너편 그림 속 공간을 규명하는 파란색 벽과의 관계를 점진적으로 드러내며, 이 장소들은 일련의 “형상들”을 위한 추상적인 윤곽을 자처하여 회화적 감각을 매개한다. 구체적인 사물들이 마치 콜라주 된 이미지들처럼 자리하고 있는데, 테이블이 놓인 실내공간은 사실적인 환영을 포기하고 회화적인, 즉 그려지는 감각을 견인하기 위한 추상적 장소로서 차원을 달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형상의 출현은 사실적인 서사에 있지 않고, 표면적인 서사적 장면을 뚫고 비결정적인 색의 변화에 의해 존재하는 회화적 실체로 파악된다. 예컨대, <Overgrown plants 1, 2>를 보면, 테이블 위에 차려진 식기들과 그 주변을 둘러싼 정물과 인물 형상의 중첩은 그들 간 서사적 관계의 부재를 명백히 함으로써, 어느 샌가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색채들 간 힘의 작용을 살피게 한다.
한쪽 벽에 나란히 모아서 설치한 일군의 그림들 <Sunset flower>(2022), <붉은 빛의 그림자>(2022), <노란 빛을 본 사람>(2022), <잠들지 못하는 시간>(2022) 등을 보자. 가시적인 형태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표피적인 착시가 만들어낸 윤곽에서 벗어나 실제의 작동하는 감각에 의해 포착되는 형상은 마치 불 속에 들어가 있는 초조한 존재들처럼 일렁이는 선과 색에 대하여 고정된 시각을 해방시킨다. 오히려 감각 기관으로서의 눈에 역량과 권한을 다시 부여할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는 소위 말하는 시각 중심적 사고와는 정확히 반대의 결과를 향한다.)
***
<하얀 주전자>에서 나의 눈을 끌었던 요소는 빛과 그림자였다. 송승은은 <일렁이는 강렬하고 무섭고 귀여운 이야기>(2018) 연작에서부터 구체적으로 “빛”이 들어오는 공간을 회화적 표현의 조건으로 살펴왔다. 그는 이것을 “숨겨진 뒷이야기를 파헤치는 일”에 비유했는데, “쉽게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질문들”에 대한 불안감과 즐거움을 동반하여 “모든 대상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은 바람”에 대해 말했다. 그는 이어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물음표를 던지며 이야기는 그에 따라 변한다”고 하면서, “흐릿하고 작게 떠오른 생각을 시작으로 물감이 미끄러지고 쌓이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얼굴과 화면을 얻게 된다”고 자신의 경험을 밝혔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의 시작을 알렸던 송승은은, 그것이 서사로 종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일렁이는 강렬하고 무섭고 귀여운” 형상의 출현을 좇으며, 그는 일체의 감각을 회화적 시도로 전환시킨 것 같았다.
방 안으로 들어온 붉은 빛, TV에서 방출된 푸른 빛, 이 빛들이 (우리가 아는) 진부한 형태들을 어떤 색채의 형상들로 변환시켜 놓을 수 있는가를 추적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오래된 회화의 역사 속에서 보이는 것[빛]과 보이지 않는 것[어둠]의 대비로 형태의 윤곽을 더욱 극적으로 가시화 했던 회화적 성취와 견주어 볼 때, 그는 형태의 윤곽 너머에서 색채의 관계로 재매개된 형상들의 어울림을 좀 더 추상적이고 실존적인 것으로 규명해 보이려 한다. <하얀 주전가>가 뜬금없이 고야의 오래된 회화를 내 머릿속에 펼쳐냈던 까닭은, 그 둘 사이의 서사적 닮음 보다 빛에 의해 강렬하게 드러난 형상으로서 비서사적 색채 형상의 출현을 (눈과 머리의 낙차 속에서) 비교해 보고 싶었던 충동 때문이었을 테다. 의인화 된 임의의 형상은 “붉은 빛”에 의해 생성된 색채 이미지다. 검은 색 얼굴은 정확한 윤곽도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붉게 바뀌어 있고, 텅 빈 배경 공간이 방어하지 못할 만큼의 강렬한 빛이 형상과 배경 사이에 투명한 그림자의 영역을 만들어 놓았다. 송승은은 그림 그리는 동안 빛이 매개하는 색채 형상에 대해 끊임없는 “물음표”를 던지며,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얼굴과 화면”을 직접 그리며 감각하게 된 것이다.
<시계 태엽 화분>(2022)과 <푸른 벨벳과 노란 컵>(2022)은 이번 전시에서 부각되는 형상과 배경 간의 추상적인 경계를 잘 보여준다. 그동안은 서사적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형태의 윤곽이 어느 정도 배경과 분리되어 견고하게 구축되어 왔다면, 이번 개인전 ⟪미끄러진 찻잔⟫에서는 임의의 형상이 배경 속으로 붕괴되어 스며든 것처럼 그 경계가 모호하고 불확실하다. 찻잔이 손과 테이블에서 미끄러지는 찰나의 순간에 주목한 송승은은, 이 비유를 통해 형상의 출현을 도왔던 추상적 장소로서의 윤곽을 (빛에 의해) 임시적으로 구축된 한시적 지지체로 “전락시켜” 놓았다. 이러한 기능 박탈은 밤의 시공간이 시사하는 어둠 속 상상력처럼 빛에 의해 파생된 시각적 불가능성을 손의 감각으로 전이시켜 촉각적이고 직관적인 회화적 실체를 경험하게 한다.
<잡을 수 없는 것들>(2022)은 금세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색채의 결합을 보여준다. 색면을 구축해내는 공간도 모호하고, 회화적 환영에 의한 투명한 윤곽선도 없다. 그 와중에서 어떤 흐릿한 형상들이 미끄러지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인상을 남기는데, 송승은은 이 위태로운 순간에 대한 몰입을 통해 형태의 붕괴를 유보하고 자신의 회화적 결정에 의해 재구성된 색채 형상의 출현을 제시한다.